솔직히 저는 한국 SF 영화에 대한 편견이 꽤 깊었습니다. CG가 어색하고, 스케일이 아쉽고, 어딘가 밀도가 부족하다는 선입견이었는데, 이번에 영화 군체를 보고 나서 그 생각을 완전히 접게 됐습니다. 극장에서 놓쳐서 VOD로 봤는데, 불 끄고 침대에 누워서 보다가 소름 돋아 벌떡 일어났습니다.
집단지성 좀비라는 설정, 이게 왜 무서운지 직접 겪어보니
처음 영화를 틀었을 때 솔직히 "또 좀비물이야?"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틀렸습니다. 군체의 좀비는 기존에 제가 알던 그 무식하게 달려드는 좀비가 아니었습니다.
이 영화의 핵심 설정은 집단지성(Hive Mind) 개념입니다. 집단지성이란 개별 개체들이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서로의 경험을 학습하여 집단 전체가 동시에 진화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개미 군집이나 벌떼가 개체 하나하나보다 훨씬 영리하게 움직이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영화 속 좀비들이 딱 그렇게 움직입니다. 한 개체가 문 여는 법을 익히면 다른 개체들도 즉시 알게 되고, 죽은 척을 하거나 CCTV를 조작하는 행동까지 집단 전체가 공유하며 실시간으로 대응 전략을 바꿉니다.
저는 좀비가 CCTV를 만지는 장면에서 진짜로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이게 그냥 본능으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구나"라는 게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렇게 "좀비가 무섭다"는 느낌을 준 작품은 부산행 이후로 처음이었습니다.
영화는 이 설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희석시키지 않고 끌고 갑니다. 군체(群體)라는 개념이 클라이맥스인 앤트밀 장면까지 일관되게 유지된다는 점이 특히 좋았습니다. 앤트밀(Ant Mill)이란 개미들이 페로몬 흔적을 따라 원형으로 계속 돌다가 집단 전체가 탈진해 죽는 현상으로, 집단지성이 잘못된 방향으로 굳어졌을 때 누구도 이를 멈추지 못하는 비극을 뜻합니다. 그 장면을 화면으로 보는 순간, 이 영화가 단순한 좀비 액션물 이상의 무언가를 노리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한국 SF 영화의 특수효과(VFX) 퀄리티도 예상 밖이었습니다. VFX란 Visual Effects의 약자로, 실제 촬영이 어려운 장면을 디지털 기술로 구현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군체 속 생명체들이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장면들은 어색하게 겉도는 느낌이 없었고, 특유의 하얀 점액질 표현과 청록빛 화면톤이 더해져 불쾌함과 공포감을 동시에 잘 살렸습니다.
군체의 핵심 설정과 볼거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실시간 학습과 진화가 가능한 집단지성 좀비 설정
- 청록빛 화면톤과 하얀 점액을 활용한 독특한 비주얼
- 지형지물을 영리하게 활용한 추격전과 빠른 카메라워킹
-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앤트밀 장면의 시각적 완성도

전지현 구교환 조합, 실제로 보니 어떤가
솔직히 이 조합은 보기 전부터 기대가 컸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기대를 넘어서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전지현은 오랜만의 스크린 복귀였는데, 냉철하고 날카로운 전문가 캐릭터를 너무 자연스럽게 소화해서 그냥 넋을 잃고 봤습니다. 액션씬에서의 움직임이나 눈빛 하나에도 힘이 있어서, 이 배우가 왜 스크린에 서야 하는 사람인지를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구교환은 특유의 툭툭 던지는 말투와 날 것 같은 연기가 영화가 너무 무거워질 뻔한 순간마다 숨통을 틔워줬습니다. 두 배우가 티격태격하는 케미를 보는 재미가 있어서, 제 경험상 이런 장르물에서 느끼기 어려운 '관계의 재미'를 추가로 얻었습니다.
다만 배우들의 열연에 비해 캐릭터 자체가 평면적이라는 아쉬움은 분명히 있습니다. 이건 저만의 생각이 아니라 많은 관람객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부분인데, 이기적인 인물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최후를 맞을지 초반에 어느 정도 예측이 됩니다. 최현희, 최현석 남매의 서사도 처음 등장 장면에서부터 결말이 보여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연 배우들뿐 아니라 좀비 무리를 연기한 엑스트라 배우들의 모션 퍼포먼스(Motion Performance)가 이 영화를 살린다는 평가가 나오는 건 이유가 있습니다. 모션 퍼포먼스란 배우의 몸 전체를 활용한 신체 연기로, 표정과 대사 없이 움직임만으로 존재감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말합니다. 좀비들의 진화 단계마다 미세하게 달라지는 움직임을 엑스트라 배우들이 몸으로 표현해 내는데, 이 부분에서 연상호 감독의 좀비 연출이 부산행, 반도를 넘어서는 수준이라는 평이 나오는 게 납득됐습니다(출처: 로튼 토마토).
연상호 감독 스타일의 한계, 그리고 이 영화의 위치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참 생각에 잠겼습니다. 잘 만든 영화인 건 맞는데, 뭔가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지적 포인트는 개연성 문제입니다. 클라이맥스인 앤트밀 장면은 이 영화 최고의 장면으로 꼽히지만, 그 직후 서영철이 앤트밀을 중단시키면서 모든 감염자의 학습 데이터가 초기화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영화 안에 없습니다. 관객이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이 부분은 저도 보면서 "어? 이게 왜 되지?" 싶었는데, 감독이 워낙 빠른 속도감을 유지하려다 보니 설명을 건너뛴 것 같았습니다.
스토리의 메시지에 대해서도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서영철이 혐오하는 소통의 부재가 결국 빌런의 동기가 되고, 세정과 설희의 불완전한 연대가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를 이 영화의 주제로 읽을 수 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반면 그런 메시지가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고 설정과 액션에 집중한 킬링타임 영화에 그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둘 다 맞습니다. 그 모호함 자체가 이 영화의 특성인 것 같습니다.
CGV 실관람객 지수인 골든 에그 점수로 보면, 군체는 88%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산행이 92%였던 것과 비교하면 아쉽지만 반도의 79%보다는 확연히 높습니다(출처: CGV). 연상호 감독의 좀비 3부작 중에서 부산행에는 약간 못 미치지만 반도보다 낫다는 평가가 지배적인데, 저도 그 평가에 대체로 동의합니다.
이 영화가 아쉬운 분, 충분한 분을 나누는 기준은 결국 하나인 것 같습니다. 깊은 서사와 메시지를 원하는 분이라면 아쉬움이 남을 것이고, 저는 좀비영화를 찾아서 보는 편입니다. 한국에서 이 정도 완성도의 좀비 액션물이 나온다는 것 자체를 즐기는 분이라면 충분히 만족스러울 겁니다.
군체는 한국 SF 영화의 기술력과 가능성을 분명히 보여준 작품입니다. 캐릭터와 스토리의 뻔함이 아쉽다면, 그 아쉬움을 인정하면서도 좀비 설정과 앤트밀 장면만큼은 오래 기억에 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주말에 팝콘 들고 완전히 압도당하고 싶은 분이라면, 저는 여전히 권하고 싶습니다.
참고: https://namu.wiki/w/%EA% B5% B0% EC% B2% B4(% EC%98%81% ED%9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