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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 사랑법 (퀴어영화, 동거, 청춘우정)

by 썬블루라이프 2026. 5. 23.

베프 하나 있으면 인생이 달라질 수 있을까요?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그런 말이 좀 낭만적인 과장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스크린을 보는 내내, 편의점 만두에 캔맥주를 나눠 마시면서 새벽까지 서로의 꿈 얘기를 했던 그 시절 친구가 자꾸 겹쳐 보여서 결국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말았습니다. 이언희 감독의 신작 〈대도시의 사랑법〉은 그런 영화입니다.

로맨스인 줄 알았던 영화, 알고 보니 다른 이야기

마케팅만 보면 누구나 김고은과 노상현의 로맨스 영화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저도 아무 정보 없이 극장에 들어갔고, 처음 10분은 "이거 흔한 로코(로맨틱 코미디) 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진짜 꺼내 보이는 건 완전히 다른 결의 이야기였습니다.

이 영화는 국내 상업영화 계열에서 현대 배경으로는 사실상 처음으로 제대로 된 퀴어 코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입니다. 여기서 퀴어(Queer)란 이성애 규범에서 벗어난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동성애자뿐 아니라 다양한 소수자를 아우르는 용어입니다. 흥수가 게이라는 사실이 재희에게 발각되는 순간부터 영화는 기존 로맨스 문법을 완전히 내팽개치고 독자적인 관계 서사를 펼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가 헤테로 마케팅, 즉 이성 간 로맨스처럼 보이게 꾸민 홍보 전략을 취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소수자에게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라고 말하는 영화가, 정작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는 방식으로 홍보했다는 아이러니입니다. 저도 그 비판에 일정 부분 수긍합니다. 다만 실제로 드라마판이 퀴어 드라마임을 예고편에 공개했다가 방영 금지 시위까지 벌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마냥 나쁜 선택이었다고만 보기도 어렵습니다. 이 딜레마 자체가 영화가 말하려는 현실의 씁쓸한 단면이기도 하니까요.

 

나무위키 : 대도시의 사랑법 포스터

 

두 배우가 만들어낸 절친 케미,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

제가 직접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두 사람 전생에 친구였나?" 싶을 정도로 편안한 케미스트리였습니다. 여기서 케미스트리(Chemistry)란 두 배우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호흡과 감정적 유대를 가리키는 영화 업계 용어입니다.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고, 이미 오래된 친구처럼 굴러가는 느낌 말입니다.

김고은은 같은 해 개봉한 〈파묘〉에서도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줬는데, 이번 재희 역은 또 전혀 다른 결의 연기입니다. 눈치 따윈 없는 척하지만 속은 제일 예민한 사람, 그 간극을 표정 하나로 표현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노상현의 흥수는 말수가 적고 묵직한 마스크 뒤로 조용히 감정이 쌓이다가 터지는 방식인데, 제 경험상 이런 절제된 연기는 오히려 관객을 더 집중하게 만들더라고요.

특히 5시 40분 장면, 서로에게 감정을 쏟아붓고 난 직후에 멍하니 서 있는 두 사람의 숨소리까지 들릴 것 같던 그 정적이 잊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엔딩에서 재희가 남자친구와 환하게 통화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흥수의 눈빛. 베프의 행복을 진심으로 응원하면서도, 자신은 그 평범한 행복을 아무 걱정 없이 누리기 어렵다는 걸 아는 그 표정은 대사 한 마디 없이도 너무 많은 것을 말했습니다.

제49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영화제 측은 "감정적 공감대와 젊음, 정체성, 사랑의 복잡한 탐험을 매혹적인 시각으로 신선하게 담아냈다"라고 평가했습니다(출처: 토론토 국제 영화제).

솔직한 아쉬움, 그래도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

모든 게 좋았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솔직히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속도감이 눈에 띄게 느슨해집니다. 대학 시절 소동극의 통통 튀던 서사 템포가 직장 생활 파트로 넘어오면서 다소 정형화된 드라마 문법으로 흘러가는 느낌이 있습니다. 긴 시간의 흐름을 한 편 안에 담으려다 보니 후반부 서브플롯들이 살짝 잔가지처럼 늘어지는 구간도 있었습니다.

나무위키를 포함한 여러 평에서도 지적하듯, 재희의 연애 파트에 등장하는 남성 캐릭터들이 거의 단편적인 악역 포지션으로 기능한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선악 구도를 단순화하면 주제 전달은 명확해지지만, 현실감과 이야기의 깊이가 함께 얕아지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이 점은 저도 보는 내내 살짝 걸렸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기존 로맨스 공식과 완전히 다른 관계 서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 막걸리 뿌리는 장면처럼, 심각한 순간에 터지는 예측 불가능한 웃음이 영화 내내 살아있습니다.
  • 두 배우의 앙상블 연기 자체가 극장에서 볼 이유가 됩니다.
  • 퀴어 코드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봐도 20대 청춘 영화로서 충분히 공감됩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대 관객층이 선호하는 영화의 특성으로 빠른 전개, 현실 공감형 대사, 강한 캐릭터 개성이 꼽혔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대도시의 사랑법〉은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진짜 묻는 것, "너는 지금 네 편이 있어?"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의 핵심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라고 밝혔습니다. 누구나 그 질문 앞에서 흔들리는 시기가 있는데, 그때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인생이 훨씬 다르게 보인다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합니다.

저도 그 시기가 있었습니다. 통장 잔고가 바닥이고, 취업도 연애도 아무것도 풀리지 않을 때, 세상이 나만 빼놓고 앞으로 가는 것 같아 무기력하고 외롭던 날들. 그때 조건 없이 제 편이 되어준 친구가 있었습니다. 편의점 만두 한 봉지와 캔맥주 하나를 나눠 마시면서, 그래도 우리 잘될 거라고 밤새 얘기하던 그 친구.

재희와 흥수의 관계를 보면서 저는 그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서로 이상형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지만, 서로의 가장 비참한 순간을 함께 버텨준 사람. 그 존재가 얼마나 큰 버팀목인지,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은 압니다. 이 영화는 그 감각을 아주 정확하게 건드립니다.

아직 망설이고 있다면, 최대한 아무 정보 없이 극장에서 보시길 권합니다. 그게 이 영화를 가장 제대로 즐기는 방법입니다. 보고 나서 오래된 친구에게 연락하고 싶어질 수도 있으니, 미리 연락처를 꺼내두셔도 좋습니다.


참고: https://namu.wiki/w/%EB% 8C%80% EB% 8F%84% EC% 8B% 9C% EC% 9D%98%20% EC%82% AC% EB% 9E%91% EB% B2%95(% EC%98%81% ED%9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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