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장바구니를 내려놓은 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습니다. 유류비에 학원비까지, 요즘은 한 달 살림을 꾸리는 것 자체가 무거운 숙제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나라 곳간은 역대급 수익을 냈다는 뉴스를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기쁘다기보다 뭔가 비틀린 느낌이 먼저 들었습니다.
고금리 후유증, 3만 건의 비명이 터졌다
올해 1분기 법원 신규 경매 신청 건수가 3만 541건을 기록했습니다. 2013년 이후 13년 만에 최대치입니다. 연간 기준으로 보면 2023년에 10만 건을 돌파한 뒤 2024년에는 11만 9천여 건, 지난해에는 12만 1천여 건으로 가파르게 늘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9년 이후 16년 만에 최대 수준이라는 말이 됩니다(출처: 지지옥션).
저는 이 숫자를 처음 봤을 때 단순한 통계로 읽히지 않았습니다. 3만 건이라는 건 3만 가정이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사태의 뿌리는 2021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에 있습니다. 기준금리란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돈을 빌려줄 때 적용하는 기본 이율로, 이 금리가 오르면 주택담보대출 이자도 함께 치솟습니다.
이른바 '영끌족', 즉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들이 그 이자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집을 경매에 내놓게 된 구조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또 다른 축이 전세사기입니다. 전세사기란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거나 반환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피해 유형인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들이 직접 강제경매를 신청하는 사례가 급격히 늘었습니다. 올해 4월 기준 주거시설 경매 1만 2천여 건 가운데 빌라 등 비아파트 비중이 72.2%에 달한다는 사실은, 이 충격이 서민들의 주거 현장에 가장 깊이 파고들었음을 보여줍니다.
경매 물량 급증의 원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2021년 이후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한 대출 이자 부담 폭증
-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의 강제경매 신청 급증
- 내수 침체와 공실 증가로 인한 상업·업무시설 경매 확대
- 공장 등 공업시설 경매도 이달 기준 역대 최대치 경신
경매 양극화, 같은 시장인데 온도가 다르다
경매 물량이 쏟아진다고 해서 모든 물건이 싸게 낙찰되는 건 아닙니다. 제가 직접 경매 정보를 들여다보면서 느낀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서울 강남권이나 마용성(마포·용산·성동) 같은 선호 지역 아파트는 낙찰가율이 90~100%를 훌쩍 넘는 반면, 외곽이나 비선호 지역 물건들은 낙찰률이 10~20%대에 그치고 감정가 대비 60% 수준까지 떨어지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낙찰가율이란 감정평가액 대비 낙찰된 가격의 비율을 뜻합니다. 즉 낙찰가율이 100%면 감정가 그대로 팔렸다는 의미이고, 60%라면 그 집의 공식 평가 가치보다 40% 낮은 가격에 팔렸다는 얘기입니다. 이 수치가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다는 건, 지금 경매 시장이 하나의 시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두 세계가 공존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시각이 갈립니다. "지금이 저가 매수의 기회"라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경쟁이 붙는 인기 단지는 오히려 시세보다 낙찰가가 높아지는 역전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물량이 많으면 싸게 살 수 있다는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또한 강남권 꼬마빌딩 같은 수익형 부동산까지 경매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유찰이 잦아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어, 시장의 혼조세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상업시설 쪽은 더 심각합니다. 지난해 상업·업무시설 경매 진행 건수는 7만여 건으로 전년 대비 43%나 급증했습니다. 온라인 소비 전환과 내수 부진이 겹치면서 자영업자들이 줄줄이 폐업하고, 그 공실이 경매 시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입니다. 제가 아는 지인도 작은 카페를 운영하다 결국 지난해 문을 닫았는데, 뉴스에서 보는 통계가 남의 얘기가 아니라는 걸 그때 실감했습니다.

복지 재배분, 역대급 수익은 누구의 몫인가
이 모든 혼란이 벌어지는 동안, 한국은행은 2026년 1분기에만 4조 2,072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습니다. 역사상 1분기 기준 최대 실적입니다(출처: 한국은행). 이 수익의 핵심은 외환매매익입니다. 외환매매익이란 한국은행이 보유한 달러 등 외화 자산을 원화로 환산할 때, 환율 상승으로 인해 발생하는 평가 차익 및 매매 수익을 말합니다. 환율이 오를수록 달러의 원화 가치가 커지니, 한국은행 입장에서는 앉아서 수익이 생기는 구조입니다.
"나라가 돈을 많이 벌었으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 수익의 배경을 보면 마냥 반길 수가 없습니다. 환율이 오른다는 건 원화 가치가 떨어진다는 뜻이고, 그 결과는 수입 물가 상승, 즉 우리가 사는 식품과 생필품 가격이 오른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마트 장바구니를 내려놓게 된 이유, 주유소 앞에서 한 번 더 고민하게 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한국은행의 순이익은 법에 따라 30%는 법정적립금으로 쌓이고, 나머지는 국고에 납입됩니다. 법정적립금이란 기관이 손실에 대비해 의무적으로 유보해야 하는 자금을 뜻합니다. 원칙적으로 이 국고 납입금은 정부의 재정 예산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고통의 반사이익으로 쌓인 그 돈이, 이자를 감당 못해 집을 잃은 영끌족과 전세사기 피해자들, 폐업한 자영업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으로 쓰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역대급 수익 발표 이후 서민 지원책이 강화됐다는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이 수익이 정말 사회적 안전망 재배분으로 이어지는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할 이유입니다.
결국 지금 경매 시장의 급증세와 한국은행의 역대급 실적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누군가의 눈물이 나라 곳간의 수익으로 전환되는 구조, 이 역설을 그냥 넘겨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경매 물량이 언제까지 늘어날지, 그리고 그 안에서 내 살림을 어떻게 지킬지, 지금 이 시점에서 한 번쯤은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동산 경매에 관심이 있다면 인기 지역과 비선호 지역의 낙찰가율 흐름을 먼저 비교해 보고, 섣불리 "싸다"는 판단에 끌려가지 않도록 주의하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또는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부동산 경매 참여나 투자 결정은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 후 신중하게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https://mbnmoney.mbn.co.kr/news/view?news_no=MM1005821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