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레스 에드워즈 감독이 연출을 맡은 쥐라기 월드: 리버스는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 시각효과상 노미네이트라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저도 극장을 나서면서 "이건 눈이 정말 즐거웠다"는 말이 절로 나왔는데, 동시에 "왜 이렇게 각본이 아쉽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연출과 각본, 두 가지 평가가 이렇게 극명하게 갈리는 영화는 오랜만이었습니다.
압도적인 연출이 살려낸 공룡의 질감
솔직히 이 영화에서 가장 감탄했던 건 프랙티컬 이펙트(Practical Effects)와 디지털 VFX의 조화였습니다. 여기서 프랙티컬 이펙트란 실제 세트나 물리적 장치를 활용해 현장에서 촬영하는 효과 기법을 말하는데, 이 둘이 잘 섞이면 컴퓨터그래픽만으로 만든 화면보다 훨씬 묵직한 현실감이 생깁니다. 공룡의 거친 피부 질감, 강물을 가르며 보트를 추격하는 티라노사우루스의 무게감이 바로 그런 효과에서 나온 것이라고 저는 봤습니다.
티라노사우루스 강가 추격 씬은 제가 직접 보면서 가장 심장이 쫄깃했던 장면이었습니다. 여느 공룡 영화처럼 전력 질주로 달려드는 단순한 방식이 아니라, 강에서 천천히 물을 마시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슬슬 다가오는 방식이었거든요. 이 빌드업(Build-up), 즉 긴장감을 서서히 쌓아 올리는 연출 구조가 정말 탁월했습니다. 고무보트가 팽창해 티라노사우루스를 잠시 가리다가 보트가 쓰러지고 나니 공룡이 사라져 있는 장면은 관객 입장에서 등줄기가 오싹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사사우루스와 스피노사우루스가 합동으로 배를 추격하는 해상 시퀀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사사우루스의 거대한 실루엣이 수면 아래에서 배 옆으로 솟아오를 때의 양감, 그 충격으로 일어나는 파도의 묘사가 실로 블록버스터다웠습니다. 케찰코아틀루스 시퀀스에서 르클레르의 사망 장면도 12세 관람가 등급 안에서 연출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처럼 보였고, 그 충격이 상당히 오래 남았습니다.

각본이 발목을 잡은 세 가지 지점
반면 각본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많은 분들이 연출만큼은 칭찬하면서도 시나리오는 수준 이하라는 평을 내리는데,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특히 세 가지 지점에서 개연성이 무너진다고 봤습니다.
- 디스토르투스 렉스의 탈출 원인이 연구원이 버린 스니커즈 봉지 하나로 인한 전기 합선이라는 설정. 돌연변이 공룡을 연구하는 시설이라면 전선 차폐 규격이나 시스템 이중화(Redundancy) 설계가 기본인데, 과자 봉지 하나에 전체 시스템이 다운된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 델가도 가족을 구조한 뒤 위험한 섬까지 데려가는 전개. 불법 작전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팀이 민간인을 굳이 끌고 들어가는 이유가 납득될 만큼 충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 결말부에서 던컨이 디스토르투스 렉스에게 잡아먹히기 직전까지 갔다가 어떻게 탈출했는지 전혀 묘사 없이 기적적으로 생환하는 장면.
여기서 시스템 이중화(Redundancy)란 주요 장치 하나가 고장 났을 때 백업 시스템이 자동으로 작동하도록 설계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위험 연구 시설에서는 기본 중의 기본인데, 각본은 그런 고민을 아예 생략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해외 팬들 사이에서 "이 영화의 진짜 악당은 스니커즈"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델가도 가족 전원 생존 구조가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공룡이 득실거리는 섬에 무방비 상태의 민간인이 들어가서 단 한 명도 희생되지 않는다는 건 긴장감을 스스로 갉아먹는 선택입니다. 차라리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이후 약혼자도 연인을 살리고 쓰러지고, 마지막에 막내 소녀 혼자 살아남아 스칼렛 요한슨 팀에게 구조되는 전개였다면 어땠을까요. 고아가 된 소녀를 주라가 양녀로 받아들이는 내레이션으로 마무리하면 다음 시리즈의 복선도 자연스럽게 깔렸을 것입니다. 할리우드의 아이 캐릭터 불사 관행이 긴장감을 얼마나 망가뜨리는지 이 영화에서 제대로 느꼈습니다.
공룡 캐릭터 배분, 팬 입장에서 아쉬운 점
시리즈 팬 입장에서 저는 이 부분이 제일 속상했습니다. 벨로시랩터는 뮤타돈에게 반격 한 번 못 하고 사냥당하거나, 죽어가는 동료를 버리고 도망치는 장면으로 퇴장합니다. 시리즈 내내 인기 공룡으로 자리 잡아온 캐릭터치고는 너무 초라한 퇴장이었습니다.
디스토르투스 렉스는 영화 제목에 버금가는 간판 공룡임에도 등장 분량이 지나치게 적습니다. 연출 덕분에 사이즈와 임팩트 자체는 압도적인데, 정작 나오는 시간이 짧으니 카리스마가 쌓일 틈이 없습니다. 이중교배 실험의 실패작이라는 설정 언급 하나로 서사를 퉁치고 끝내는 것도 아쉽습니다. 팬들 상당수가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괴물이라는 존재에 대한 윤리적 고찰을 기대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뮤타돈도 마찬가지입니다. 날개 달린 벨로시랩터라는 외형적 특징이 실제 전투 씬에서 전혀 활용되지 않습니다. 날개를 이용한 위협이나 공격 방식의 차별화가 없으니, 그냥 기존 랩터를 출연시켰어도 진행상 아무런 차이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각효과(VFX, Visual Effects) 기술 자체는 이전 시리즈 대비 확연히 발전했습니다. VFX란 디지털 기술로 실사 촬영에 합성하거나 가상의 영상을 제작하는 기법 전반을 말합니다. 아카데미 시각효과상 노미네이트가 괜한 평가가 아니라는 건 극장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출처: 아카데미상 공식 사이트). 다만 기술적 성취가 아무리 뛰어나도 캐릭터 서사가 받쳐주지 않으면 관객의 몰입이 흔들린다는 걸 이 영화가 증명하기도 했습니다.
연출과 각본 사이에서, 이 영화는 어떤 작품인가
가레스 에드워즈 감독은 각본이 이미 완성된 상태에서 합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점을 감안하면 별로인 각본을 연출로 상당 부분 살려냈다는 평가가 맞다고 봅니다. 반면 시리즈의 근간을 만든 각본가와 스필버그의 개입이 오히려 이번 각본의 수준을 떨어뜨렸다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의견에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쥐라기 공원 1편을 쓴 각본가가 다시 참여했다는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낸 셈이니까요.
영화 서사 구조에서 캐릭터 동기 부여(Character Motivation)란 인물이 왜 그 행동을 하는지 관객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정하는 요소를 말합니다. 이 동기 부여가 흔들리면 아무리 화려한 액션이 이어져도 관객은 어느 순간 극에서 이탈하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델가도 가족을 섬까지 데려가는 전개나, 던컨의 기적적인 생환이 그런 이탈 지점이 됩니다. 실제로 제 경험상 후반부 탈출 씬에서 긴장감이 확 꺾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여름 블록버스터로서 흥행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공룡이라는 소재가 여전히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으로 쥐라기 시리즈는 국내에서도 꾸준히 상위권 흥행을 기록해 왔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공룡 비주얼 하나만으로도 극장을 찾게 만드는 힘, 그게 이 시리즈의 핵심 자산이라는 걸 다시 확인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연출은 A, 각본은 C"라는 평가가 가장 정확하다고 봅니다. 모사사우루스·스피노사우루스 해상 시퀀스와 티라노사우루스 강가 추격 씬은 극장에서 봐야 제맛입니다. 단, 시리즈 팬이라면 공룡 캐릭터 배분과 각본의 구멍에 실망할 수 있다는 걸 미리 감안하고 입장하시길 권합니다. 다음 시리즈에서는 감독의 역량에 걸맞은 각본을 만나길 진심으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