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거리를 걷다 보면 요즘 묘한 감정이 올라옵니다. 줄을 선 사람들 대부분이 외국인이고, 그들이 들고 있는 건 낯선 한글 로고가 찍힌 작은 유리병들입니다. 저도 지인에게 한국 인디 브랜드 세럼을 선물하며 "이거 외국에서 더 유명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감각이 이제는 숫자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2026년 1분기 화장품 수출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거제도 조선소에는 다시 불이 켜졌습니다.
수출 역대 최대, 그런데 주가는 왜 엇갈렸나
2026년 1분기 화장품 수출액은 총 31억 3,500만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출처: 산업통상자원부). 1월 10억 2,500만 달러(전년 대비 36.1% 증가), 3월 11억 9,300만 달러(27.0% 증가)로 분기 내내 고공행진이었습니다. 업황이 이렇게 좋은데 주가는 왜 기업마다 천차만별일까, 저도 처음엔 그게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시장은 '얼마나 팔았나'보다 '어떤 구조로 버는가'를 보고 있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은 1분기 매출 1조 2,227억 원, 영업이익 1,378억 원을 기록하며 각각 6.4%, 7.6% 늘었습니다. 그런데 주가는 1년 새 6.9% 오르는 데 그쳤고, LG생활건강은 오히려 17.2% 하락했습니다. 반면 에이피알은 같은 기간 주가가 462% 넘게 뛰었습니다. 외국인 보유율도 18%에서 37%로 두 배 이상 늘었습니다.
이 차이를 만든 핵심은 ODM 구조와 글로벌 직접 수요입니다. 여기서 ODM이란 제조자개발생산(Original Design Manufacturing)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단순히 주문받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제품 기획과 설계까지 제조사가 직접 담당하는 방식입니다. 코스맥스는 1년 새 주가가 19.8% 올랐고 외국인 보유율은 34.5%에서 39.8%로 확대됐습니다. 코스메카코리아는 81.1% 급등했습니다. 어떤 인디 브랜드가 뜨더라도, 그 제품을 만드는 ODM 업체는 수혜를 피해 갈 수 없는 구조입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국내 인디 브랜드들의 제품 완성도가 몇 년 전과 비교해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텍스처, 향, 흡수감 모두 대형 브랜드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습니다. 그 배경에 탄탄한 ODM 업체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투자자라면 지금 시점에서 주목할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브랜드 파워가 검증된 기업보다 어떤 브랜드가 뜨더라도 수혜를 받는 ODM·OEM 업체
- 미국, 일본, 유럽 등 시장 다변화가 실제 매출에 반영된 기업
- 슬로 에이징, 비건 뷰티 등 최신 트렌드를 가장 빠르게 상용화하는 생산 시스템 보유 여부
물론 낙관만 할 수는 없습니다. 진입장벽이 낮아진 탓에 브랜드 난립이 심각합니다. 오늘 뜨는 브랜드가 내년에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명동의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10년 터전을 접는 작은 가게들의 이야기는 수출 전광판의 숫자와는 전혀 다른 현실입니다. 성장의 과실이 현장까지 고루 미치는지는 여전히 물음표입니다.

ODM을 넘어 MRO로, 조선업의 체질이 바뀐다
2026년 5월 8일, 워싱턴 D.C. 상무부 청사에서 한국 산업통상자원부와 미국 상무부가 한-미 조선 파트너십 이니셔티브(KUSPI) 구축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습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과 하워드 러드닉 미국 상무장관이 임석한 자리였습니다.
이번 협약의 핵심은 MRO 시장 진입입니다. MRO란 유지(Maintenance), 보수(Repair), 정비(Overhaul)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선박이나 장비를 건조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운영 및 정비 수요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배를 한 번 팔고 끝나는 게 아니라, 이후 수십 년간의 관리 계약까지 수주하는 구조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조선업의 고질적 문제였던 '수주 절벽'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거제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큰 이모가 몇 년 전만 해도 통화할 때마다 독이 비어간다며 한숨을 쉬었는데, 요즘은 일손이 부족하다고 하십니다. 현장의 온도가 달라졌다는 건 숫자로 표현되기 전에 사람의 목소리로 먼저 느껴집니다.
이번 협력의 배경엔 미국의 현실이 있습니다. 미국은 자국 내 조선소 노후화와 심각한 인력 부족으로 해군 함정 유지보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건조 능력과 효율적인 정비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입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개념이 있습니다. 이번 협력에는 LNG 추진선, 암모니아 추진선 등 친환경 선박 분야의 기술 교류도 포함돼 있습니다. 여기서 LNG 추진선이란 액화천연가스(Liquefied Natural Gas)를 연료로 사용하는 선박으로, 기존 벙커유 대비 황산화물 배출을 90% 이상 줄일 수 있는 친환경 선박입니다. 강화되는 국제 환경 규제 속에서 이 기술 격차를 얼마나 벌려 놓느냐가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등 국내 대형 조선사들의 향후 10년을 가를 승부처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출처: 연합뉴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MOU 하나로 당장 수조 원이 굴러들어 오는 건 아닙니다. 존스법(Jones Act)처럼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규제는 여전히 살아있고, 실제 대규모 수주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차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워싱턴에 협력 센터가 들어서는 거창한 뉴스보다, 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숙련공 자리를 채우고 하청업체 임금 체불 소식이 끊이지 않는 현실은 여전히 무겁게 남아 있습니다. 수조 원의 수주 낙수효과가 독 바닥의 용접공에게 닿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그것이 진짜 질문입니다.
K-뷰티와 K-조선, 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산업이 2026년 한국 경제의 새 축으로 함께 부상하고 있습니다. 둘의 공통점은 위기 이후 체질을 바꿨다는 점입니다. 사드 이후 중국 의존을 벗어난 화장품, 불황기를 버티며 친환경·MRO로 사업 모델을 넓힌 조선업 모두 그렇습니다. 투자자라면 지금 당장의 주가보다 이 구조적 변화가 얼마나 지속 가능한지를 먼저 보시길 권합니다. 거시 지표의 숫자가 현장 사람들의 삶으로 이어지는지를 함께 묻는 시선도 잃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참고: https://www.thebk.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9430
https://v.daum.net/v/20260509113114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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